케이트의 아트마켓 10

예술 작품 거래와 계약



글. 케이트 리(Kate K. Lee)

2021.04.28

- 예술 작품 구매와 재판매 시 계약서 챙겨야

- 구두 약속과 인보이스만으로는 거래 증명에 한계

- 자동차나 부동산 거래와 마찬가지로 여겨야


쇼핑을 자주 하다 보면 마음에 드는 상점이 생기게 마련이고, 단골 가게가 되곤 한다. 단골손님에게는 종종 특별 대우가 주어지기도 하는데, 가격을 할인해 주기도 하고, 세일 계획을 미리 일러주는 등 혜택이 따른다.

갤러리도 마찬가지이다. 오랜 시간 거래를 하다 보면 갤러리스트와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기도 한다. 친한 갤러리스트가 생기면 할인 외에도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을 다른 사람보다 먼저 보거나, 구하기 힘든 그림을 구할 수도 있다. 친밀함은 신뢰로 이어지고, 그 사람의 약속이 곧 거래가 되는 일이 예술계에서는 아주 흔한 일이다. 하지만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렇듯이 말로 맺은 약속은 깨어지기 쉽고, 깨어진 거래는 엄청난 손실을 초래하기도 한다.


친구와 비즈니스 고객 사이


매켄지가 구입한 르누아르의 위작으로 작자미상. Photo: Courtesy of Artnet.


미국 뉴욕의 유명 갤러리 중 하나인 포럼 갤러리(Forum Gallery)의 대표인 로버트 피쉬코(Robert Fishko)와 컬렉터 리처드 매켄지(Richard McKenzie, Jr.)의 관계는 구두 약속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두 사람은 갤러리스트와 고객의 관계를 넘어 10년 이상 가까운 친구사이로 지내 왔다. 피쉬코는 매켄지에게 갤러리가 판매하는 모든 작품의 20% 할인과, 2차 마켓에서 구해온 작품에 대해서는 매켄지가 원할 경우 5%의 커미션만을 더한 가격으로 판매할 것을 약속했다. 그런데 언제까지나 돈독하게 이어질 것 같던 이들의 사이는 2011-15년 서로 여러 법정 소송을 제기하며 갈라서게 되었다.

매켄지는 진품이라는 피쉬코의 말을 믿고 구입한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와 로댕(Auguste Rodin)의 작품들이 모두 위작으로 판명되었고, 오랜 기간 많은 작품 판매에서 그가 가격을 부풀려 할인을 해 주는 것처럼 자신을 속여왔다고 밝혔다. 매켄지는 피쉬코를 계약위반과 고객에 대한 신의성실 의무(fiduciary duties) 위반 등으로 제소했다.

하지만 뉴욕 연방 법원은 매켄지가 피쉬코와의 거래에서 정가에서 할인을 약속했다는 어떠한 증명도 제시하지 못했고, 법적 효력이 있는 계약이 성립되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또, 갤러리스트와 고객 사이의 친밀도와 신뢰만으로 비즈니스에서 신의 관계를 성립시키지 않는다며 원고의 소송을 기각했다. 많은 거래를 통해 수백만 달러의 돈이 오갔지만 매켄지가 증거로 가진 것은 인보이스(invoices) 뿐이었다.


불안한 말로 맺은 약속의 허망함


마를렌 뒤마(Marlene Dumas), 나루토비츄 대통령 1922(Narutowicz. The President, 1922), 2012. Photo: Marta Malina Moraczewska via Wikimedia Commons.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으로 동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마를렌 뒤마(Marlene Dumas)는 작품에 인종문제와 폭력 등을 다루며 감정을 잘 표현하는 작가이다. 뒤마의 작품을 좋아한 컬렉터 크레이그 로빈스(Craig Robins)는 뉴욕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화랑인 데이비드 즈위너 갤러리(David Zwirner Gallery)의 대표인 즈위너로부터 뒤마의 작품 판매를 약속받았다. 하지만 나중에 이런저런 이유로 즈위너가 판매를 거부하자 로빈스는 즈위너를 계약 위반으로 제소했다.

뉴욕 연방 법원은 2010년 판결에서 로빈스가 즈위너와의 판매 약속을 증명하는 계약서를 제시하지 못했다며 역시 소송을 기각했다. 세계적인 화랑의 구두 약속도 계약서 없이는 증명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술품도 자동차나 부동산을 구매할 때처럼

물건을 사고파는 일은 거래의 하나다. 거래를 하기 전 우리는 하자가 없는지 등 여러 가지를 살펴보고 물건을 구입한다. 아울러, 자동차나 부동산 등 고가인 물건을 구입할 때는 반드시 계약서를 쓰는 것을 당연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동차나 부동산만큼 고가의 예술 작품을 구입하는 사람들 간에서 계약서를 쓰는 일이 흔하지 않은 편이다. 잘 아는 사이에 계약서를 운운하는 것이 인정머리 없게 느껴진다고도 하고, 왠지 체면이 깎이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친숙한 사이라고 자동차나 부동산을 명의 이전 등 계약 서류를 챙기지 않고 거래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계약서는 지금 눈 앞에 보이는 이익을 위해서 만드는 것이라기보다 나중에 일어날 수 있는 분쟁을 대비해 준비하는 것일 수 있다. 분쟁이 일어난 후 법적 소송을 하는 일은 시간과 돈이 많이 드는 힘든 과정이다. 미리 마련한 계약서 한 장이 많은 시간과 돈, 또 스트레스를 줄이는 가장 현명한 방법일 수 있다. 예술계에서도 신뢰를 담보로 한 기존의 거래 관행이 '계약서 교환'의 뉴 노멀(New Normal) 방식으로 차츰 정착돼 인보이스만으로 이뤄지던 많은 거래들이 한층 투명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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